나의 자존감에게,
안녕! 우리가 함께한 지 어느새 사십 년이 조금 넘었구나. 그동안 우린 수없이 산길을 오르내리며 때로는 숨 가쁘게, 때로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곤 했지.
기억나니? 7년 전쯤인가. 그때 우린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모든 게 느리게 가던 곳. 그 나라 말을 그리 잘하지 못해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잖아. 마치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고슴도치 같았달까. 바깥세상의 낯선 기운이 다가올 때마다 가시를 세우고 스스로를 방어했지만, 정작 그 가시는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들었을지도. 사실은 그 작은 몸 안에 숨어드는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려고 애썼던 거였는데.
다행인 건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거야.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도 언제부터인가 나를 몰랐고, 오해하고, 비난하고, 내버려두었어도, 끊임없이 반복되던 상실감과 외로움 속에서 숨을 놓지 않고 끝끝내 버틸 수 있었던 건, 황폐했던 그 마음속에서도 네가 너의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날을 기억해?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한 날. 더 이상 그곳에서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그에게 끝을 말했어. 그날, 내가 서있는 베이지색 계단을 비추던 햇살은 유난히 따스했지.
그렇게 우리는 그곳을 떠났고, 새로운 길 위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어.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롭진 않았지. 때로는 낯선 숲속에서 방향을 잃은 사슴처럼, 발걸음을 멈춘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했어. 길이 있기는 한 건지, 혹은 내가 걸어도 되는 길인지조차 알 수 없었고. 그럴 때마다 너는 내 안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었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 내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도, 스스로를 탓하며 벽을 높이 쌓아 올릴 때도, 네가 묵묵히 너의 자리에 있었기에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고, 비록 서툴지만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낼 수 있었어.
이제는 알아. 너를 잃지 않는다면,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나는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앞으로도 우리, 어떤 날이 오더라도 함께 걸어가자. 너와 나, 우리가 만드는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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