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렸다. 올겨울 들어 걸린 첫 번째 감기. 나는 아픈 티가 잘 안 날 뿐더러, 아픈 티를 잘 내지도 못한다. 그리고 사실, 이건 그저 흔하디흔한 감기일 뿐이다. 물 많이 마시고 며칠 푹 쉬면 자연스레 사라질 감기. 그런데도 오늘은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세상만사 다 제쳐두고 푹 쉬고 싶다. 티브이만 온종일 틀어둔 채 바닥에 누워 하루를 그렇게 어영부영 다 보내버리고 싶다. 해야 할 것 하나 없이.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혼자 아픈 것도, 그렇게 혼자 앓다 보면 낫는 것도. 어릴 적부터 나는 왠지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당시 집 안과 밖에서 생계를 꾸려가시는 부모님과, 티 나게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오는 동생, 그리고 내가 있었다. 공부든 숙제든 학교에서의 일은 당연히 알아서 했고, 가출도 무박 일일로 티 안 나게, 일탈도 티 안 나게, 혼자 또는 친구들과 실행하고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렇게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 기댈 곳이 없었던 것 같다. 곁에 좋은 친구들도 있었고, 좋은 선생님들도 계셨고, 열심히 최선의 사랑으로 우리를 키워주시는 부모님도 계셨는데 말이다. 나의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생활도 집에서의 시간도 그리 크게 외롭진 않았다.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고 보니 혼자라고 생각했던 시간도 사실 혼자는 아니었다. 부모님, 동생, 친구를 비롯하여 할머니가 계셨고, 누워계셨던 할아버지도 생각난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강아지도 있었다. 주변엔 늘 누군가가 함께하고 있었다. 단지 홀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머릿속 정리되지 않은 많은 생각들을 스스로 감당하고 있었을 뿐.
지금의 나는 엄마가 되어 아이와 크림이를 돌보며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서툴지만 그리 힘들진 않다. 힘들어도 티 안 나게 힘들어하려는 어떤 어른의 버릇이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마음 기댈 곳이 없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댈 곳을 만들어주려 애쓰고 있었다는 걸. 이제는 내가 그 곁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걸.
'오늘 in Korea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차갑고도 따뜻한 우리의 겨울 이야기 (0) | 2025.01.04 |
---|---|
[자존감] 나의 자존감에게 (0) | 2025.01.03 |
[시작] 설렘, 나를 믿는 희미한 확신 (0) | 2025.01.02 |
[2025] 아주 보통의 일상이지만, 결코 같을 수는 없는 (feat. 미션캠프) (2) | 2025.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