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를 배우기 시작하며 민화에 대한 이런 저런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민화는 어떤 그림이고,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그림들을 어떤 뜻을 담아 그렸는지..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려 읽으며 내가 궁금해했던 민화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
1. 민화란 무엇인가
요약하여 말하면, 민화는 조선 시대에 주로 일반 백성들이 실용적이고 장식적인 목적으로 그린 그림을 뜻한다.
전문 화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표현한 그림으로, 자유로운 형식과 상징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로 복(福), 장수, 부귀영화를 기원하거나 일상생활, 자연, 신화적 요소를 소재로 삼아 그려졌다.
민화는 전통 문화의 소박한 미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민중들의 희망과 염원이 담긴 예술 형태로 평가된다고 한다.
2. 민화의 매력 첫번째 - '확대원근법'
책을 읽으며 민화에 대해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민화는 서양식 원근법이 아닌, 여러 개의 원근법을 결합한 '확대원근법'을 사용하였다는 것이었다.
다시점 즉, 여러 사람의 시점 혹은 한 사람의 여러 시점이 들어가 있어,
다른 공간을 같은 시간대에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시간을 한 공간에 드러내기도 하며,
하나의 공간 속에 사계절이 공존하기도 하고,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림속 기물 하나하나를 뜯어 보면 다양한 시점이 한 화면에 담겨있지만,
등장하는 사물 하나하나 세심한 배려 속에 세밀하게 묘사되어
모두가 소중한 각각의 존재로서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부분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 참고문헌: 아름다운 우리그림1 민화, 심규섭 / 고양이, 우리 그림 속을 거닐다, 고경원 ]
이전에 익숙해져 있던 서양식 원근법 및 빛의 방향에 따른 일관된 명암 처리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처음 민화를 그리며 궁금해했던 부분이 풀렸고 또 이 점이 민화의 하나의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3. 민화의 매력 두번째 - 연하고질(煙霞痼疾)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집착에 가까운 성격,
초충도, 화훼도, 화조도를 비롯 인물화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바로 진짜 모습이고 진짜라야 그것을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는 표현을 보며,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 참고문헌: 민화, 색을 품다, 오순경 ]
하나의 대상을 관찰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그 안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것, 또 거기에 어떤 관념을 담아 그린 이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내가 느낀 민화의 두번째 매력이었다.
그래서인지 본그림 습작을 그릴 때, 모두가 같은 본그림을 보고 그리지만 결국에는 자기만의 시선과 느낌으로 표현하여 탄생한 작품들이 가진 각기 다른 느낌이 좋았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煙 煙霞痼疾 霞痼疾
4. '본'그림
민화의 특징 중 하나로 본그림이라는 점이 있다. 본그림은 우리 그림의 재생산방법이자 변주, 확장하는 원리를 담고 있고, 궁중회화를 담당했던 도화서 화원이나 자비대령화원은 모두 본그림을 이용해서 창작을 했다고 한다.
[ 참고문헌: 아름다운 우리그림1 민화, 심규섭 ]
베껴하는 방식이라고 독창성이 없는 그림이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찌보면 미술 등의 모든 부분에서 모방, 복제, 합성, 융합, 창조의 과정을 거치지 않나 싶다. 본그림으로 본을 따서 그리기에 민화를 배우기 시작하는 초보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그렇게 전통 민화 속에 담긴 조상들의 시선도 마음도 느껴볼 수 있고, 작품을 그려나가며 나만의 시선과 표현들로 새로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민화'를 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5. 민화의 종류와 담긴 뜻
일월오봉도 - 음양의 조화와 인의예지신 오행의 덕목을 상징하는, 임금님 뒤에 놓이는 궁중채색화
궁모란도 - 부귀를 상징하는 꽃중의 왕 모란과 장수를 뜻하는 태호석을 그린 궁중장식화
십장생도 - 해, 산, 물, 소나무, 거북, 학, 불로초 등 열 가지 장생물로 구성된 민화로, 장수와 불로장생의 염원을 담고 있다. 자연 속 장생물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건강과 영원한 삶을 상징하며, 주로 집안 장식용으로 활용된다.
화조도 - 꽃(정, 음)과 새(동, 양)를 그린 그림, 음과 양의 대비와 조화, 부부 화합과 집안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길상화, 새의 종류에 따라 까치나 참새는 기쁨 혹은 기쁜 소식, 한쌍의 원앙과 기러기는 부부 금슬과 백년해로, 기러기 떼는 자손 번창, 학 특히 송학(소나무 위에 있는 학)은 장생 또는 높은 지위나 군자, 오직 어진 지도자가 다스리는 시대에만 나타난다는 상상의 새 봉황
화훼도 - 꽃과 풀을 그린 그림, 꽃과 풀 외에 새, 그릇, 채소, 벌레 등과 함께 그린다.
모견도 - 강아지와 어미 개를 그린 그림으로, 주로 다산, 가족의 화목, 보호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연화도 - 연꽃, 연과(연밥), 여뀌, 갈대를 소재로 그린 그림, 모진 어려움을 극복하고 학업을 마쳐 과거 급제하여 군자의 길을 갈 것이며, 후대에 자손 또한 연생귀자로 연이어 출사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연화는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오니汚泥에 물들지 않으며, 수중에 있지만 물에 잠기지 않는다.
연화는 강하고 굳세어 영구히 살며 씨앗은 생의生意를 간직하고 있다.
뿌리는 끊임없이 싹을 틔워 퍼져나가니 그 조화가 쉼이 없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초충도 - 풀과 벌레를 주제로 그린 그림으로, 자연의 생명력과 조화를 상징한다. 주로 꽃, 풀, 곡식, 과일, 나비, 벌, 잠자리 등 다양한 자연 요소를 섬세하게 그려내어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며, 조선 시대의 자연관과 민중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해도 - 물고기와 게 같은 물속 생물을 소재로 한 민화로, 풍요와 다산,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특징이며, 수확과 가정의 번영을 상징한다.
파초도 - 파초는 당나라의 회소란 학자가 종이 살 돈이 없어 파초를 심어 잎을 따서 그 위에 시를 적었다하여 선비의 고결한 정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파초의 다른 의미는 땅을 개척할 때 불을 질러 모든 식물을 다 죽여도 파초만이 새싹을 다시 틔운다하여 '기사회생'의 그림으로 읽는다. 파초도는 옛 선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영미한 젊은 선비들이 당쟁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스승이 아끼는 제자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내리는 그림이었다고도 한다.
군접도 - 여러 마리의 나비가 꽃이나 풀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그린 민화로, 부부의 화합, 행복, 장수를 상징한다. 나비는 전통적으로 사랑과 기쁨을 상징하며, 그림 속 화려하고 다양한 나비들은 조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로 결혼식이나 신혼부부의 방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백동자도 - 여러 명의 동자(어린아이)들이 놀이, 공부, 춤, 악기 연주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다산, 자손 번창, 행복한 가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자는 순수함과 행복을 상징하며, 이 그림은 주로 결혼식이나 자녀를 바라는 부부의 방에 장식되거나 복과 번영을 기원하는 선물로 사용되었다.
책가도 - 책장에 책이나 여러 기물들을 놓아 보이게 한 그림을 책가도, 책장 없이 책과 기물을 쌓아 놓은 그림을 책거리라고 부른다. 책, 문방구, 꽃, 도자기 등을 주로 그리며, 학문과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출세와 성공을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 주로 다손 또는 다자를 상징하는 오이나 수박, 참외, 석류 등 씨가 많은 과일이나 채소가 나오기도 한다.
기명절지도 - 진귀한 제기나 식기 등을 그린 기명도와 장식을 위해 꺾어 온 꽃이나 나뭇가지 등을 그린 절지도가 합쳐진 말이다. 대표적인 화원으로 장승업을 꼽을 수 있다. 평안, 부귀, 장수 등의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 기물들을 그리며 희망과 복을 담은 그림이기도 하다.
호작도 - 호랑이와 까치를 함께 그린 민화로, 호랑이는 악귀를 쫓는 존재,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 그림은 평화와 길운을 기원하며 가정이나 사찰의 장식물로 활용된다.
문배도 - 문에 걸어두는 그림으로, 주로 호랑이, 귀신 등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이는 악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며, 보호와 길상의 상징이 담겨 있다.
문자도 - 보통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수(寿) 한자 글자에 그림이나 장식적 요소를 결합한 민화로, 글자와 이미지의 상징적 조합을 통해 덕목, 교육적 가치, 또는 복과 장수와 같은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복(福)’, ‘수(壽)’ 같은 글자에는 길상적인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러한 문자도는 집안 장식이나 선물로 활용된다.
효(孝): 효도(孝道) - 부모에 대한 효성을 다하는 도리
제(悌): 제도(悌道) - 형제 간의 예의와 도리
충(忠): 충성(忠誠) - 나라나 주인에게 충실하고 성실함
신(信): 신뢰(信賴) - 믿음과 신용
예(禮): 예절(禮節) - 사람들 간의 예의 바른 행동
의(義): 의리(義理) - 도리와 의로운 마음
염(廉): 청렴(淸廉) - 부패하거나 사치하지 않고 깨끗하고 정직함
치(恥): 치욕(恥辱) - 수치나 부끄러운 마음
수(寿): 장수(長壽) - 긴 생명과 건강
어변성룡도 - 물고기가 용으로 변하는 모습을 묘사한 민화로, 출세, 성공, 입신양명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전통적으로 물고기가 용문을 넘으면 용이 된다는 전설을 기반으로 하여 학업, 시험, 사회적 성공을 기원하며 제작된 것으로, 주로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림으로 활용된다.
[ 참고문헌: 민화, 색을 품다, 오순경 / 알고 보면 반할 민화, 윤열수 ]
6. 민화에 담긴 아름다움이란
여러 새로운 창작 민화 작품들을 보며 전통 민화를 잃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통민화의 본그림을 그리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고, 또한 민화라는 것이 당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들을 그린 것이라는 점을 비추어볼 때,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들을 민화의 기법으로 새롭게 창조하여 그리는 그림들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도, 음악도, 글도, 결국엔 그 사람의 시선과 생각과 느낌을 자유로이 드러내주는 것들이니,
좋아하는 분야를 배우고, 익히고, 표현하며 나를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행복과 애정, 마음과 의미를 담아낸다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느끼는 민화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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